참관인으로서 오션이 바라본
5차 정부 간 협상위원회 결과
아시아 최초로 부산에서 열린 INC-5, 그 결과는?
이유나 | (사)동아시아바다공동체 오션 국제협력팀장 | yunalee@osean.net
[사진 1. 부산에서 개최된 제5차 정부 간 협상위원회 개회식]
국제 플라스틱 협약의 초안을 마련하기 위한 제5차 정부 간 협상위원회(The fifth session of the Intergovernmental Negotiating Committee, 이하 INC-5)가 지난 11월 25일부터 12월 1일까지 부산 벡스코에서 열렸다. 유엔환경총회(UNEA) 결의문(5/14)에 따라 2년간 이어진 협상의 마지막 회의로 예정된 INC-5는 협약의 초안을 마무리할 마지막 기회로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전 세계 170여 개국에서 모인 약 4,000명이 한자리에 모여 세부 의제별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열띤 논의를 이어갔지만, 첨예한 이해관계의 충돌로 협상이 진전을 이루지 못한 채 연장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번 기사에서는 INC-5의 주요 협상 과정과 그 핵심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캐나다 오타와에서 한국 부산에 이르기까지
INC-5 협상을 본격적으로 다루기에 앞서, 두 가지 중요한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INC-4 회의에서 가장 두드러진 현상 중 하나는 산유국 및 주요 플라스틱 생산국들이 ‘유사입장그룹(LMG)’을 결성하고 플라스틱 생산 규제에 강하게 반발한 점이다. 사우디, 이란, 쿠웨이트, 러시아, 인도, 쿠바, 바레인 등 국가는 플라스틱 생산 규제가 경제 성장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우려하며, 협약에서 생산량 감축보다는 재활용 촉진과 포장 디자인 개선, 폐기물 관리 등의 문제에 집중할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국제 협약의 중요한 이해관계자로서 강력한 협상력을 행사했다. 이러한 입장은 또 다른 가시적인 움직임인 기업들의 로비와 맞물려 협약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엑손모빌, 셸, 다우 등 LMG 국가와 궤를 같이 하는 주요 화학 기업도 마찬가지로 플라스틱 생산 감축에 반대하며 생산 이후의 문제 해결에 집중할 것을 주장했다. 이들 기업은 플라스틱 생산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으며, 생산 감축이 경제적 손실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했다. 이들은 INC-4 에 약 200명, INC-5에 약 220명의 참관인을 파견하는 등 강력한 로비 활동을 통해 많은 국가에 영향을 미치며, 플라스틱 생산을 축소하는 합의에 대한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물론 모든 기업이 플라스틱 협약에 적나라한 반대를 표명하고 있지는 않다. 일부 민간 기업과 온건한 NGO는 플라스틱 순환 경제를 위한 강력한 규제 도입을 지지했다. 2022년, 엘렌 맥아더 재단과 WWF가 주도한 ‘국제 플라스틱 협약을 위한 비즈니스 연합(BCGPT)’은 플라스틱 생산 감축, 재활용 촉진, 순환 경제 모델을 지지하며, 이러한 접근 방식이 장기적인 환경적·경제적 혜택을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생산 단계에서부터 규제를 강화하고, 재사용 및 리필 시스템 촉진, 유해 화학물질 규제, EPR(Extended Producer Responsibility) 등의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INC-4 회의 종료 직전, 르완다와 페루는 부산으로 가는 다리(Bridge to Busan) 선언문을 발표하고 강력한 규제를 포함한 협약을 요구한 바 있다. 이 선언문은 플라스틱 생산 감축, 재정 메커니즘 구축, 유해 화학물질 규제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100여 개국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비록 법적 구속력 있는 조항을 포함하지는 않았지만 더 강력한 협약을 추진하기 위한 위한 국제적 연대를 과시했다.
INC-5를 앞두고 의장단은 협상의 교착 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비공식 제안서(Non-paper)를 회람했다. 이는 INC-4 이후 각국의 입장 차이로 복잡해진 협약문 초안을 정리하고 논의 가능한 쟁점으로 축약한 문서였다. 특히, INC-5를 최종 협상으로 마무리 짓겠다는 의장단과 개최국 한국 및 일부 국가의 강한 의지를 반영한 결과물이기도 했다. 제안서는 협의의 초점을 명확히 하고 절차적 효율성을 제고하려는 시도로 회의 시작 한 달 전 세 번째 수정안까지 공개되며 논의의 기준점으로 제시됐다. 그러나 이를 두고 일부 대표단은 협약의 핵심 의제가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는 한편, 다른 일부는 실질적 진전을 위한 현실적 접근이라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INC-5가 마지막 협상이 될 수 있을지, 이 문서의 향방에 이목이 집중됐다.
INC-5 협상 전개, 그리고 회의 연장
INC-5의 개회와 함께, 회의 기간 동안 협상의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 의장의 비공식 제안서를 사용할지, 아니면 INC-4에서 논의된 기존 협약문 초안을 그대로 사용할지에 대한 합의가 필요했다. 의장의 제안서는 기존 협약문 초안에서 논의가 어려운 부분을 일부 정리하고, ‘도달 가능한 결과(Low-hanging fruit)’를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이 제안서는 공식 협의 절차의 외연에서 의장단의 임의 권한으로 제시된 문서였기에 회원국의 동의 없이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려웠다. 지난 INC-4에서 LMG 국가들이 지연전술을 펼친 바 있어 INC-5 개회에서 다시 지연전술로 활용될 우려가 있었으나, 다행히 의장의 제안서를 기본으로 하되 기존 협약문 초안을 참조하는 방식으로 예상보다 빠르게 합의가 이루어졌다.
본격적인 INC-5 협상은 당일 저녁부터 4개의 분과회의(Contact Group)로 나누어 시작됐다. 그러나 준비 부족으로 인한 협사의 효율성 저하 문제가 제기되었다. 회의장이 협소해 국가 대표단뿐만 아니라 참관인들의 참석도 제한되었으며, 종이 없는 행사로 운영된다던 목표와 달리 인터넷 서비스가 원활하지 않아 일부 참석자들은 부산공항에서 휴대용 포켓 와이파이를 공수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또한, 협상과는 별개로 일회용품만 사용하는 카페테리아가 운영되어 즉각적인 비판과 개선 요구가 쏟아졌으며, 회의 진행 중 개선 작업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는 불만이 일었다.
협상 자체도 실질적인 진전은 부족했다. 의장의 짧은 제안서 기준으로도 32개 조항에 달하는 문서를 두고 각 조항을 세부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지연전술이 각 분과회의마다 이어졌다. 각국의 의견 차이는 여전했으며, 여러 문항에 대해 괄호 안에 의견을 삽입하는 형식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협약문을 수정하고 정리하는 대신, 이전 회의들과 마찬가지로 괄호와 함께 문구가 추가된 문서가 만들어졌다. 결국 나흘 차부터는 참관인 없이 국가 대표단만 참석하는 비공식 회의가 시작됐다. 국제 협상에서 참관인은 시민의 눈과 귀를 대신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공간 부족과 절차적 문제로 그들의 참석이 제한되면서 참관인들 사이에서는 이번 회의를 ‘최악의 INC’라는 평가가 나돌았다.
회의의 마지막 날인 12월 1일 오후, 의장의 최종 문서가 배포되었으나, 22 페이지에 걸친 내용과 형식에서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여전히 많은 부분이 괄호 속에 담겨 있었고, 조항별로 극단적인 선택지가 주어져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 이어진 마지막 전체회의에서 의장은 예상대로 회의 연장을 선언했다.
전체회의를 시작하며 의장 안토니아 바야스는 "아직 정상에 도달하지 않았지만, 정상이 눈앞에 보인다”라고 INC-5를 평가하며, “여정은 우리가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할 때 마무리될 것”이라며 앞으로의 진전에 기대와 의지를 내비쳤다. 국가 대표단 사이에서는 비공식 회의가 실질적인 논의의 진전에 효과적이었다는 평이 있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유엔 회의장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희생하는 방식이어서는 안된다는 경고가 함께했다. 또한 비공식 회의의 결과를 공개적으로 확인할 수 없으나, 일부 대표단은 플라스틱 오염 문제를 기후 변화, 생물 다양성, 화학물질 관리 등 환경 문제와 연결 지으며 협약의 정의에 대한 어려움이 있음을 인정했다.
INC-5 회의 자체가 괄호 속에 담긴 것과 마찬가지라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완전히 의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강력한 협약의 핵심으로 꼽히는 세 가지 조항 - 생산 감축, 재정 매커니즘을 포함한 이행 방안, 유해화학물질 규제를 다루는 제안서에 각각 약 100여 개국이 서명하였다. 이 조항들은 INC-5.2 논의에서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정부의 입장
하지만 한국은 이 세 가지 성명서 모두에 서명하지 않았다. 한국 정부는 INC-5를 마지막 회의로 삼아 협의를 마무리 짓는 데 중점을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주최국으로서 중재 역할을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지만, 생산 감축에 대해서는 기계적 중립을 고수하며 회의 속행을 지원하는 발언 외에는 구체적인 행동을 보여주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건설적인 협상이 어려운 상황에서 소수의 산유국들과 생산 감축에 동의한 100여 개국 사이에 중재자를 자처한 한국은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채였다. 표면적으로 중재자 역할을 핑계 삼고, 실은 플라스틱 생산 주요국가로서 근시안적인 산업보호 정책을 고수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드는 지점이다.
한국 정부의 역할이 눈에 띄었던 지점은 폐어구 관련 제안에서였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해양 플라스틱 오염 문제는 육상 기인과 해상 기인으로 구분할 수 있다. 협약에서 논의 중인 대부분의 조항이 이미 육상 기인 쓰레기를 다루고 있는 반면, 해상 기인 플라스틱 오염 문제는 그 특수성으로 인해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했다. 특히, 폐어구 문제는 협약문 내에서 적절한 위치를 찾지 못하고 논의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었다. INC-2 와 INC-3 기간 중에 폐어구 문제는 사용 후 플라스틱 쓰레기 처리 조항에서 제한적으로 다루어졌다. INC-4에서는 폐어구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협약 논의에서 제외하되 별도의 프로그램을 통해 다루자는 의견이 제기되었고, 이후 INC-5 의장 제안서에서도 제외되었다.
그러나 이번 INC-5 회의에서 한국은 제7조 제1항 배출 및 방출에서 폐어구를 별도로 다루는 규정을 추가하도록 하는 서면의견서를 제출했다. 제안서는 해양에서 폐어구가 유실되는 비율이 높고, 다른 폐기물에 비해 회수와 재활용이 어려운 특성을 고려하여 두 가지 주요 수정안을 포함했다. 첫 번째는 어구의 전 생애 주기를 관리하는 하위 조항을 도입해 설계 개선, 표식 부착, 추적, 회수, 적절한 처리 및 재활용을 포함시키자는 내용이다. 두 번째는 ‘공급망의 플라스틱 펠릿, 플레이크 및 파우더’라는 표현을 더 포괄적인 ‘공급망 내 플라스틱’으로 수정하자는 제안이다. 한국의 제안서에 동의를 표하는 국가가 많기 때문에, 폐어구 문제는 협약문 안에 적절하게 위치할 것으로 예측된다. 해양 쓰레기 문제를 오래 다루어 온 오션과 여타 시민사회 및 국제기구는 별도 조항을 신설하도록 주장하기도 했으나, 협상이 난항을 겪는 가운데 기존 협약문 조항에서 폐어구가 포함될 만한 조항을 찾는다면 한국 정부의 제안이 가장 적절한 대안으로 여겨진다.
앞으로의 전망
아직 INC-5.2가 언제, 어디서 열릴지 미지수이다. 협상을 위한 전 지구적인 비용이 증가하고 있는 동시에 플라스틱으로 인한 피해는 멈출 줄 모른다. 협약 결의안에서 조속한 합의를 요구한 이유도 플라스틱 오염에 신속한 국제 대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INC-5.2에서 합의를 이루어야 하는 동시에 지금까지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속 빈 강정 협약이 되도록 둘 수도 없다.
INC-5 폐회에서 바야스 의장은 "길은 없다, 길은 걸으며 만든다”라는 안토니오 마차도의 말을 인용하며 “우리의 작은 하지만 확고한 걸음이 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희망을 남겼다. 각국의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를 넘어, 협약을 향한 국제 사회의 노력이 이어질 예정이다. 부디 INC-5.2에서 강력하고 법적 구속력 있는 실질적인 합의, 즉 과학적 근거에 기반하여 전 지구적 플라스틱 오염을 막을 수 있는 협약의 성안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또한 플라스틱 규제와 순환 경제로의 전환을 위한 국제적인 협력의 긴 여정에서 오션 역시 맡은 바 역할을 충실히 해내리라는 다짐을 전한다.
참관인으로서 오션이 바라본
5차 정부 간 협상위원회 결과
아시아 최초로 부산에서 열린 INC-5, 그 결과는?
이유나 | (사)동아시아바다공동체 오션 국제협력팀장 | yunalee@osean.net
[사진 1. 부산에서 개최된 제5차 정부 간 협상위원회 개회식]
국제 플라스틱 협약의 초안을 마련하기 위한 제5차 정부 간 협상위원회(The fifth session of the Intergovernmental Negotiating Committee, 이하 INC-5)가 지난 11월 25일부터 12월 1일까지 부산 벡스코에서 열렸다. 유엔환경총회(UNEA) 결의문(5/14)에 따라 2년간 이어진 협상의 마지막 회의로 예정된 INC-5는 협약의 초안을 마무리할 마지막 기회로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전 세계 170여 개국에서 모인 약 4,000명이 한자리에 모여 세부 의제별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열띤 논의를 이어갔지만, 첨예한 이해관계의 충돌로 협상이 진전을 이루지 못한 채 연장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번 기사에서는 INC-5의 주요 협상 과정과 그 핵심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캐나다 오타와에서 한국 부산에 이르기까지
INC-5 협상을 본격적으로 다루기에 앞서, 두 가지 중요한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INC-4 회의에서 가장 두드러진 현상 중 하나는 산유국 및 주요 플라스틱 생산국들이 ‘유사입장그룹(LMG)’을 결성하고 플라스틱 생산 규제에 강하게 반발한 점이다. 사우디, 이란, 쿠웨이트, 러시아, 인도, 쿠바, 바레인 등 국가는 플라스틱 생산 규제가 경제 성장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우려하며, 협약에서 생산량 감축보다는 재활용 촉진과 포장 디자인 개선, 폐기물 관리 등의 문제에 집중할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국제 협약의 중요한 이해관계자로서 강력한 협상력을 행사했다. 이러한 입장은 또 다른 가시적인 움직임인 기업들의 로비와 맞물려 협약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엑손모빌, 셸, 다우 등 LMG 국가와 궤를 같이 하는 주요 화학 기업도 마찬가지로 플라스틱 생산 감축에 반대하며 생산 이후의 문제 해결에 집중할 것을 주장했다. 이들 기업은 플라스틱 생산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으며, 생산 감축이 경제적 손실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했다. 이들은 INC-4 에 약 200명, INC-5에 약 220명의 참관인을 파견하는 등 강력한 로비 활동을 통해 많은 국가에 영향을 미치며, 플라스틱 생산을 축소하는 합의에 대한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물론 모든 기업이 플라스틱 협약에 적나라한 반대를 표명하고 있지는 않다. 일부 민간 기업과 온건한 NGO는 플라스틱 순환 경제를 위한 강력한 규제 도입을 지지했다. 2022년, 엘렌 맥아더 재단과 WWF가 주도한 ‘국제 플라스틱 협약을 위한 비즈니스 연합(BCGPT)’은 플라스틱 생산 감축, 재활용 촉진, 순환 경제 모델을 지지하며, 이러한 접근 방식이 장기적인 환경적·경제적 혜택을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생산 단계에서부터 규제를 강화하고, 재사용 및 리필 시스템 촉진, 유해 화학물질 규제, EPR(Extended Producer Responsibility) 등의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INC-4 회의 종료 직전, 르완다와 페루는 부산으로 가는 다리(Bridge to Busan) 선언문을 발표하고 강력한 규제를 포함한 협약을 요구한 바 있다. 이 선언문은 플라스틱 생산 감축, 재정 메커니즘 구축, 유해 화학물질 규제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100여 개국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비록 법적 구속력 있는 조항을 포함하지는 않았지만 더 강력한 협약을 추진하기 위한 위한 국제적 연대를 과시했다.
INC-5를 앞두고 의장단은 협상의 교착 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비공식 제안서(Non-paper)를 회람했다. 이는 INC-4 이후 각국의 입장 차이로 복잡해진 협약문 초안을 정리하고 논의 가능한 쟁점으로 축약한 문서였다. 특히, INC-5를 최종 협상으로 마무리 짓겠다는 의장단과 개최국 한국 및 일부 국가의 강한 의지를 반영한 결과물이기도 했다. 제안서는 협의의 초점을 명확히 하고 절차적 효율성을 제고하려는 시도로 회의 시작 한 달 전 세 번째 수정안까지 공개되며 논의의 기준점으로 제시됐다. 그러나 이를 두고 일부 대표단은 협약의 핵심 의제가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는 한편, 다른 일부는 실질적 진전을 위한 현실적 접근이라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INC-5가 마지막 협상이 될 수 있을지, 이 문서의 향방에 이목이 집중됐다.
INC-5 협상 전개, 그리고 회의 연장
INC-5의 개회와 함께, 회의 기간 동안 협상의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 의장의 비공식 제안서를 사용할지, 아니면 INC-4에서 논의된 기존 협약문 초안을 그대로 사용할지에 대한 합의가 필요했다. 의장의 제안서는 기존 협약문 초안에서 논의가 어려운 부분을 일부 정리하고, ‘도달 가능한 결과(Low-hanging fruit)’를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이 제안서는 공식 협의 절차의 외연에서 의장단의 임의 권한으로 제시된 문서였기에 회원국의 동의 없이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려웠다. 지난 INC-4에서 LMG 국가들이 지연전술을 펼친 바 있어 INC-5 개회에서 다시 지연전술로 활용될 우려가 있었으나, 다행히 의장의 제안서를 기본으로 하되 기존 협약문 초안을 참조하는 방식으로 예상보다 빠르게 합의가 이루어졌다.
본격적인 INC-5 협상은 당일 저녁부터 4개의 분과회의(Contact Group)로 나누어 시작됐다. 그러나 준비 부족으로 인한 협사의 효율성 저하 문제가 제기되었다. 회의장이 협소해 국가 대표단뿐만 아니라 참관인들의 참석도 제한되었으며, 종이 없는 행사로 운영된다던 목표와 달리 인터넷 서비스가 원활하지 않아 일부 참석자들은 부산공항에서 휴대용 포켓 와이파이를 공수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또한, 협상과는 별개로 일회용품만 사용하는 카페테리아가 운영되어 즉각적인 비판과 개선 요구가 쏟아졌으며, 회의 진행 중 개선 작업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는 불만이 일었다.
협상 자체도 실질적인 진전은 부족했다. 의장의 짧은 제안서 기준으로도 32개 조항에 달하는 문서를 두고 각 조항을 세부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지연전술이 각 분과회의마다 이어졌다. 각국의 의견 차이는 여전했으며, 여러 문항에 대해 괄호 안에 의견을 삽입하는 형식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협약문을 수정하고 정리하는 대신, 이전 회의들과 마찬가지로 괄호와 함께 문구가 추가된 문서가 만들어졌다. 결국 나흘 차부터는 참관인 없이 국가 대표단만 참석하는 비공식 회의가 시작됐다. 국제 협상에서 참관인은 시민의 눈과 귀를 대신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공간 부족과 절차적 문제로 그들의 참석이 제한되면서 참관인들 사이에서는 이번 회의를 ‘최악의 INC’라는 평가가 나돌았다.
회의의 마지막 날인 12월 1일 오후, 의장의 최종 문서가 배포되었으나, 22 페이지에 걸친 내용과 형식에서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여전히 많은 부분이 괄호 속에 담겨 있었고, 조항별로 극단적인 선택지가 주어져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 이어진 마지막 전체회의에서 의장은 예상대로 회의 연장을 선언했다.
전체회의를 시작하며 의장 안토니아 바야스는 "아직 정상에 도달하지 않았지만, 정상이 눈앞에 보인다”라고 INC-5를 평가하며, “여정은 우리가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할 때 마무리될 것”이라며 앞으로의 진전에 기대와 의지를 내비쳤다. 국가 대표단 사이에서는 비공식 회의가 실질적인 논의의 진전에 효과적이었다는 평이 있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유엔 회의장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희생하는 방식이어서는 안된다는 경고가 함께했다. 또한 비공식 회의의 결과를 공개적으로 확인할 수 없으나, 일부 대표단은 플라스틱 오염 문제를 기후 변화, 생물 다양성, 화학물질 관리 등 환경 문제와 연결 지으며 협약의 정의에 대한 어려움이 있음을 인정했다.
INC-5 회의 자체가 괄호 속에 담긴 것과 마찬가지라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완전히 의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강력한 협약의 핵심으로 꼽히는 세 가지 조항 - 생산 감축, 재정 매커니즘을 포함한 이행 방안, 유해화학물질 규제를 다루는 제안서에 각각 약 100여 개국이 서명하였다. 이 조항들은 INC-5.2 논의에서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정부의 입장
하지만 한국은 이 세 가지 성명서 모두에 서명하지 않았다. 한국 정부는 INC-5를 마지막 회의로 삼아 협의를 마무리 짓는 데 중점을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주최국으로서 중재 역할을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지만, 생산 감축에 대해서는 기계적 중립을 고수하며 회의 속행을 지원하는 발언 외에는 구체적인 행동을 보여주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건설적인 협상이 어려운 상황에서 소수의 산유국들과 생산 감축에 동의한 100여 개국 사이에 중재자를 자처한 한국은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채였다. 표면적으로 중재자 역할을 핑계 삼고, 실은 플라스틱 생산 주요국가로서 근시안적인 산업보호 정책을 고수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드는 지점이다.
한국 정부의 역할이 눈에 띄었던 지점은 폐어구 관련 제안에서였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해양 플라스틱 오염 문제는 육상 기인과 해상 기인으로 구분할 수 있다. 협약에서 논의 중인 대부분의 조항이 이미 육상 기인 쓰레기를 다루고 있는 반면, 해상 기인 플라스틱 오염 문제는 그 특수성으로 인해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했다. 특히, 폐어구 문제는 협약문 내에서 적절한 위치를 찾지 못하고 논의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었다. INC-2 와 INC-3 기간 중에 폐어구 문제는 사용 후 플라스틱 쓰레기 처리 조항에서 제한적으로 다루어졌다. INC-4에서는 폐어구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협약 논의에서 제외하되 별도의 프로그램을 통해 다루자는 의견이 제기되었고, 이후 INC-5 의장 제안서에서도 제외되었다.
그러나 이번 INC-5 회의에서 한국은 제7조 제1항 배출 및 방출에서 폐어구를 별도로 다루는 규정을 추가하도록 하는 서면의견서를 제출했다. 제안서는 해양에서 폐어구가 유실되는 비율이 높고, 다른 폐기물에 비해 회수와 재활용이 어려운 특성을 고려하여 두 가지 주요 수정안을 포함했다. 첫 번째는 어구의 전 생애 주기를 관리하는 하위 조항을 도입해 설계 개선, 표식 부착, 추적, 회수, 적절한 처리 및 재활용을 포함시키자는 내용이다. 두 번째는 ‘공급망의 플라스틱 펠릿, 플레이크 및 파우더’라는 표현을 더 포괄적인 ‘공급망 내 플라스틱’으로 수정하자는 제안이다. 한국의 제안서에 동의를 표하는 국가가 많기 때문에, 폐어구 문제는 협약문 안에 적절하게 위치할 것으로 예측된다. 해양 쓰레기 문제를 오래 다루어 온 오션과 여타 시민사회 및 국제기구는 별도 조항을 신설하도록 주장하기도 했으나, 협상이 난항을 겪는 가운데 기존 협약문 조항에서 폐어구가 포함될 만한 조항을 찾는다면 한국 정부의 제안이 가장 적절한 대안으로 여겨진다.
앞으로의 전망
아직 INC-5.2가 언제, 어디서 열릴지 미지수이다. 협상을 위한 전 지구적인 비용이 증가하고 있는 동시에 플라스틱으로 인한 피해는 멈출 줄 모른다. 협약 결의안에서 조속한 합의를 요구한 이유도 플라스틱 오염에 신속한 국제 대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INC-5.2에서 합의를 이루어야 하는 동시에 지금까지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속 빈 강정 협약이 되도록 둘 수도 없다.
INC-5 폐회에서 바야스 의장은 "길은 없다, 길은 걸으며 만든다”라는 안토니오 마차도의 말을 인용하며 “우리의 작은 하지만 확고한 걸음이 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희망을 남겼다. 각국의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를 넘어, 협약을 향한 국제 사회의 노력이 이어질 예정이다. 부디 INC-5.2에서 강력하고 법적 구속력 있는 실질적인 합의, 즉 과학적 근거에 기반하여 전 지구적 플라스틱 오염을 막을 수 있는 협약의 성안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또한 플라스틱 규제와 순환 경제로의 전환을 위한 국제적인 협력의 긴 여정에서 오션 역시 맡은 바 역할을 충실히 해내리라는 다짐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