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려진 것들의 초상, 바다의 거울이 되다
쓰레기의 에머지를 그려 낸 김정아 예술감독 작품전 관람기
(사)동아시아바다공동체 오션 연구소장 이종명 jmlee@osean.net

구겨진 종이컵, 30년 만에 빛을 보다
(사)동아시아바다공동체 오션 예술감독 김정아 작가의 개인전에 다녀왔다. 김 작가의 관심은 항상 ‘버려진 것들’에 가 있었다. 전시장 입구 카페 바에 구겨진 종이컵 모양의 도자기 컵들이 놓여 있는데, 진짜 카페 소품인 줄 알았지만 김 작가의 작품이었다. 예전에 필자에게 김작가가 “대학시절에도 이런 작업을 했는데 그때는 팔 생각을 못해서 아쉬었다”라고 하니, 내가 “그때는 어차피 안 팔렸을테니 아쉬워 할 것 없다”라고 해줘서 위안을 얻었단다. 이번에는 제법 많이 팔렸다고 한다. 구겨진 종이컵 모양의 도자기 컵이라니 요즘 감성에 맞다. 물론 30년 전에는 안 팔렸을 거라고 다시한번 팩폭과 위로를 전했다.
에머지, 쓰레기에 담긴 에너지의 총합
시스템 생태학에 ‘에머지’라는 개념이 있다. 사물의 가치는 그것이 만들어질 때까지 투입된 모든 에너지의 총합인데, 여기에는 태양과 광물을 포함한 모든 자연의 에너지와 인간 활동이 포함된다. 이 관점에서 보면 쓰레기는 매우 독특한 존재다. 사물이 사용될 때까지 원재료 채굴과 제품 생산, 그리고 운송, 판매까지 에너지가 투입되어 효용 가치가 최고에 도달한다. 그런데, 그 쓰임을 다한 후에도 쓰레기가 옮겨지는 데에는 추가로 에너지가 투입된다. 쓰레기 차를 타기도 하고, 바람과 해류와 파도의 에너지까지 투입되어 어느 먼 해변에 도달한다. 에머지 관점에서 보면 해양쓰레기는 쓰임이 다한 이후에 더 큰 에너지 메모리가 더해진 물건이다. 필자는 이런 해양쓰레기를 과학으로 연구하고, 김 작가는 예술로 표현한다.
김정아 작가는 버려진 것들의 생애사에 애정과 관심을 갖고 작품을 만든다. 출산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딸기를 먹다가 접시에 버려진 꼬다리들을 보는데, 왠지 본인과 처지가 비슷해서 그려봤고, 20년 째 비슷한 작업을 계속하고 있단다. 먹고 남은 생선 뼈, 그릇 바닷에 붙은 물 김치 조각, 애매하게 소스가 부족해진 채소 볶음 등… 효용은 다했지만 사실은 더 많은 역사와 의미를 갖고 있을 수 있는 것들이 무시당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해양쓰레기까지 가 닿았다.


한 걸음의 노력으로 마주하는 바다의 두 얼굴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렌티큘러를 이용한 바다 풍경 시리즈였다. 보는 각도에 따라 그림이 달라지는 렌티큘러를 붙여서, 쓰레기로 뒤덮인 해변이 깨끗하게 바뀌는 모습을 마치 동영상처럼 보여준다. 원래 의도는 '한걸음 다가서면 바다가 깨끗해져요'였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앉았다 일어서는 '노력'을 해야 하는 걸로 바뀌었다. 화려한 산호초가 하얗게 비닐봉지에 덮이고 산호의 색이 바래는 장면은 색깔의 대비가 너무 선명해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 도요새가 앉아 있는 갯바위 앞으로 윤슬이 눈부시게 빛났는데, 한걸음 비껴서 보면 바닥이 온통 스티로폼 부표와 폐어구로 뒤덮여 있다. 도요새는 긴 부리로 갯벌 속에 숨은 게나 지렁이를 잡아 먹는데, 부서진 스티로폼 속에서 먹이를 파먹다가 미세플라스틱 조각을 함께 먹었음이 분명하다.
현대의 벨라스케스, 문명의 뒷면을 그리다
바로크 풍으로 그린 해양쓰레기 초상화 시리즈가 약간 구석방 느낌의 벽면을 채운 것도 이채로웠다. 누군가의 소중한 친구였을 애착 인형을 김 작가가 바닷가에서 주워 그 안타까운 사연을 생각하며 그림을 그렸단다. 이후로도 오랫동안 주머니에 넣고 다녔는데 본인도 결국 잃어버려 그림에 안타까운 사연이 하나 더해졌다. 초상화의 주인공들이 모두 그런 사연 하나씩은 갖고 있다. 기쁜 날을 축하하기 위해 한껏 부풀었지만 끝내는 터져버린 풍선, 세계의 바다를 여행하고 왔을 수도 있는 목욕 오리, 현대 문명의 발자취를 상징하는 중국산 하이힐 바닥까지...
김 작가는 렘브란트 풍으로 그렸다는데, 나는 왠지 벨라스케스가 떠올랐다. 바로크 시대의 화가들은 주로 귀족의 초상화를 그렸지만 궁정화가였던 벨라스케스는 난쟁이, 시녀, 노파를 그렸다. 주인공이 되지 못할 것 같은 대상을 주인공으로 만든 것이다. 벨라스케스는 '거울 속의 거울' 기법을 통해 그림 속 주연과 조연을 뒤바꿈으로써 장면 속의 서사를 풍성하게 만들고, 관람객이 '역지사지'할 수 있게 만들었다. 김정아 작가의 해양쓰레기 초상화는 현대 문명의 뒷면을 거울에 비춰 보여주고 있다. 미대 나온 김정아 작가가 진짜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것을 이번 해양쓰레기 초상화를 통해 동료 화가들에게 인정 받았다고 한다. 그림은 당연이 너무 잘 그렸지만, 우리 문명이 외면해 온 가장 불편하고도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에 정말 좋은 작품들이다.
버려진 것들의 초상, 바다의 거울이 되다
쓰레기의 에머지를 그려 낸 김정아 예술감독 작품전 관람기
(사)동아시아바다공동체 오션 연구소장 이종명 jmlee@osean.net
구겨진 종이컵, 30년 만에 빛을 보다
(사)동아시아바다공동체 오션 예술감독 김정아 작가의 개인전에 다녀왔다. 김 작가의 관심은 항상 ‘버려진 것들’에 가 있었다. 전시장 입구 카페 바에 구겨진 종이컵 모양의 도자기 컵들이 놓여 있는데, 진짜 카페 소품인 줄 알았지만 김 작가의 작품이었다. 예전에 필자에게 김작가가 “대학시절에도 이런 작업을 했는데 그때는 팔 생각을 못해서 아쉬었다”라고 하니, 내가 “그때는 어차피 안 팔렸을테니 아쉬워 할 것 없다”라고 해줘서 위안을 얻었단다. 이번에는 제법 많이 팔렸다고 한다. 구겨진 종이컵 모양의 도자기 컵이라니 요즘 감성에 맞다. 물론 30년 전에는 안 팔렸을 거라고 다시한번 팩폭과 위로를 전했다.
에머지, 쓰레기에 담긴 에너지의 총합
시스템 생태학에 ‘에머지’라는 개념이 있다. 사물의 가치는 그것이 만들어질 때까지 투입된 모든 에너지의 총합인데, 여기에는 태양과 광물을 포함한 모든 자연의 에너지와 인간 활동이 포함된다. 이 관점에서 보면 쓰레기는 매우 독특한 존재다. 사물이 사용될 때까지 원재료 채굴과 제품 생산, 그리고 운송, 판매까지 에너지가 투입되어 효용 가치가 최고에 도달한다. 그런데, 그 쓰임을 다한 후에도 쓰레기가 옮겨지는 데에는 추가로 에너지가 투입된다. 쓰레기 차를 타기도 하고, 바람과 해류와 파도의 에너지까지 투입되어 어느 먼 해변에 도달한다. 에머지 관점에서 보면 해양쓰레기는 쓰임이 다한 이후에 더 큰 에너지 메모리가 더해진 물건이다. 필자는 이런 해양쓰레기를 과학으로 연구하고, 김 작가는 예술로 표현한다.
김정아 작가는 버려진 것들의 생애사에 애정과 관심을 갖고 작품을 만든다. 출산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딸기를 먹다가 접시에 버려진 꼬다리들을 보는데, 왠지 본인과 처지가 비슷해서 그려봤고, 20년 째 비슷한 작업을 계속하고 있단다. 먹고 남은 생선 뼈, 그릇 바닷에 붙은 물 김치 조각, 애매하게 소스가 부족해진 채소 볶음 등… 효용은 다했지만 사실은 더 많은 역사와 의미를 갖고 있을 수 있는 것들이 무시당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해양쓰레기까지 가 닿았다.
한 걸음의 노력으로 마주하는 바다의 두 얼굴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렌티큘러를 이용한 바다 풍경 시리즈였다. 보는 각도에 따라 그림이 달라지는 렌티큘러를 붙여서, 쓰레기로 뒤덮인 해변이 깨끗하게 바뀌는 모습을 마치 동영상처럼 보여준다. 원래 의도는 '한걸음 다가서면 바다가 깨끗해져요'였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앉았다 일어서는 '노력'을 해야 하는 걸로 바뀌었다. 화려한 산호초가 하얗게 비닐봉지에 덮이고 산호의 색이 바래는 장면은 색깔의 대비가 너무 선명해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 도요새가 앉아 있는 갯바위 앞으로 윤슬이 눈부시게 빛났는데, 한걸음 비껴서 보면 바닥이 온통 스티로폼 부표와 폐어구로 뒤덮여 있다. 도요새는 긴 부리로 갯벌 속에 숨은 게나 지렁이를 잡아 먹는데, 부서진 스티로폼 속에서 먹이를 파먹다가 미세플라스틱 조각을 함께 먹었음이 분명하다.
현대의 벨라스케스, 문명의 뒷면을 그리다
바로크 풍으로 그린 해양쓰레기 초상화 시리즈가 약간 구석방 느낌의 벽면을 채운 것도 이채로웠다. 누군가의 소중한 친구였을 애착 인형을 김 작가가 바닷가에서 주워 그 안타까운 사연을 생각하며 그림을 그렸단다. 이후로도 오랫동안 주머니에 넣고 다녔는데 본인도 결국 잃어버려 그림에 안타까운 사연이 하나 더해졌다. 초상화의 주인공들이 모두 그런 사연 하나씩은 갖고 있다. 기쁜 날을 축하하기 위해 한껏 부풀었지만 끝내는 터져버린 풍선, 세계의 바다를 여행하고 왔을 수도 있는 목욕 오리, 현대 문명의 발자취를 상징하는 중국산 하이힐 바닥까지...
김 작가는 렘브란트 풍으로 그렸다는데, 나는 왠지 벨라스케스가 떠올랐다. 바로크 시대의 화가들은 주로 귀족의 초상화를 그렸지만 궁정화가였던 벨라스케스는 난쟁이, 시녀, 노파를 그렸다. 주인공이 되지 못할 것 같은 대상을 주인공으로 만든 것이다. 벨라스케스는 '거울 속의 거울' 기법을 통해 그림 속 주연과 조연을 뒤바꿈으로써 장면 속의 서사를 풍성하게 만들고, 관람객이 '역지사지'할 수 있게 만들었다. 김정아 작가의 해양쓰레기 초상화는 현대 문명의 뒷면을 거울에 비춰 보여주고 있다. 미대 나온 김정아 작가가 진짜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것을 이번 해양쓰레기 초상화를 통해 동료 화가들에게 인정 받았다고 한다. 그림은 당연이 너무 잘 그렸지만, 우리 문명이 외면해 온 가장 불편하고도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에 정말 좋은 작품들이다.